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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노동인문학:서울노동100년역사] 제4강, 빌딩 숲에서 밀려난 노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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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일, 노동인문학 4번째 시간에는 80년대 이후 서울의 노동투쟁 역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6ㅂ의 악순환이라는 말을 아시나요? 80년대 한국 가난한 여성들이 배움, 벌이, 방, 밥, 병, 빚과 관련해서 노력해도 극복하기 어려웠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영세민 여성의 취업률은 중, 상류층 여성보다 월등히 높았지만 그녀들의 취업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답니다.
85년에는 임금투쟁을 한 노조간부 세 명의 구속에 구로공단 전자/섬유 4개 노조가 연대파업을 한 ‘구로동맹파업’이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은 기업을 넘은 연대를 하며 노조간부들의 석방과 노조탄압 중지를 요구하는 농성을 전개했고, 나아가 노동악법을 폐지할 것, 경찰의 폭력을 중단할 것 등을 외치며 최초의 노동자 정치투쟁을 벌였습니다. 이 때 현재의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김문수, 홍영표 등의 정치인들도 노동운동으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홍영표 의원의 대우자동차 파업 에피소드는 재미있는 이야기였는데요. 대우자동차 파업 당시 사측은 5% 이상의 임금인상은 어렵다고 하고, 노동조합은 18%의 임금인상을 요구하여 상당히 첨예한 상황에서, 자동차 설계도면이 있는 연구소를 점거하였다고 합니다. 연구소 점거에 의해 결국 대우차는 노동조합과 성실하게 협의에 임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때의 임금 단체교섭은 16.4%의 인상률을 합의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그 이후 현대자동차, 쌍용자동차 등 다른 모든 완성차 공장들의 연구소들이 대공장이 있는 곳과 동떨어진 곳에 따로 세워졌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였죠.
87년 6월 항쟁 승리 이후에는 경제 민주화에 대한 노동자의 갈망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3,311건의 노동쟁의가 있었습니다. 개개인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데에 그치던 노동자들이 노동쟁의를 통해 노동조합 결성의 필요성을 깨달으며 6월에서 7월까지 한 달 새에 기존의 두 배가 넘는 노조조직률을 보여줬습니다. 지금은 굳건한 현대자동차 노조도 그 당시에는 사측의 격렬한 반대를 뚫고 막 만들어진 시기였다고 하네요. 서로 연대한 사업장들은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사용자와 경찰에 맞서 나와 남을 따지지 않고 투쟁했습니다. 오늘 날 정규직과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등 노동자의 신분이 나뉜 사회에서는 그 연대성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 버렸지만, 노동의 가치를 알리려는 행동은 여전히 노동교육과 활동을 통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5번째 시간, 5강은 11월 9일 오후 7시부터 세운상가 근처 아세아전자상가 3층 SE:CLOUD 강의실에서 있었습니다. 5강의 내용도 노동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많은 분들께 공유드리겠습니다. 노동인문학에 변함없는 관심 부탁드립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