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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6 [노동인문학:서울노동100년역사] 제2강, 일제강점기와 해방전후 서울노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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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2일에 시작된 노동인문학 하반기 강좌:서울노동 100년 역사! 저번 주 목요일, 10월 19일에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의 서울의 노동사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강은 프라하의 명물, '천문시계탑'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됐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시계를 만든 장인의 눈을 멀게 하여, 다른 곳에 비슷한 시계탑을 못 만들도록 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건축물입니다. 동유럽의 도시 프라하의 명물인 천문시계탑보다 몇 배나 더 크고 장엄한 건축물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20세기 초 서울 종로 한복판에 세워진 한성전기(지금의 한전) 사옥 옥상에 설치한 시계탑이었다고 합니다.
▲ 프라하 천문시계탑 전경
▲1899년, 한성전기 사옥(현재의 종로 2가 8번지)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구한말때부터 이미 자본주의의 상징이라고도 볼 수 있는 '랜드마크 건축물'이 세워지고 있었다는 이야기지요. 1919년 3.1운동을 확대하는 데 공헌을 했던 건 탑골공원의 학생들 뿐만 아니라 동아연초 공장의 노동자들의 파업 및 만세시위, 용산인쇄소 노동자들의 파업 및 거리시위도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특히 동아연초 노동자들의 파업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8시간 노동제'를 쟁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파업이기도 했지요. 1920~30년 대 공황에 이은 양극화, 그리고 이와 같은 어려운 노동자들의 삶이 독립운동 뿐만 아니라 파업 등 노동운동에도 영향을 줬다고 합니다. 이 시대 노동자와 자본가의 거주지였던 동대문, 용산, 신당동, 청계천은 계급으로 분화된 주거공간이기도 했습니다.
▲ 일제시대 여성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강의하는 이정호 강사님. 일제 강점기의 노동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그 다음은 해방 전후의 서울 노동사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해방 전후의 전평 (1946년 9월 추수 대봉기 등으로 1948년 정부 수립 이전에 소멸) 과 대한노총의 대립, 보건사회부 장관으로 대한노총 위원장이 입각하자 이어진 혼란, 1953년 '노동 4법'(노조법, 노동쟁의조정법, 노동위원회법, 근로기준법)의 제정 등이 있었지만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법과 운동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50년대 말 자유당 정권의 탄압 혹은 착취 속에서도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운동이 서서히 세력화되기 시작했는데요. 이와 같은 움직임이 결국 4.19 혁명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점점 가까운 현대사의 흐름을 짚어가는 노동인문학2:서울노동100년역사! 그 세 번째 시간, 3강은 오늘 오후 7시 부터 세운상가 근처 아세아전자상가 3층 SE:CLOUD 강의실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관심있는 분들 누구나 오실 수 있으니까 많은 참여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